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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들]

한국을 끝까지사랑하신 어느박사님을 오래도록 기억하려한다

경재생각은 ? 2011. 11. 24. 09:33

 

고 박병선 박사님의 명목을 빕니다.

                                           2011.11.23.(프랑스 현지시간: 22일)

 

인물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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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프랑스 여성 서지(書誌)학자 박병선 박사가 프랑스 파리에서 향년 88세로 타계했다. 1955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 그는 2009년 암 치료를 위해 10개월 동안 귀국했던 것을 제외하고는 줄곧 프랑스에 거주하면서 한국 문화를 위해 헌신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사서(司書)로 근무했던 그는 1972년 이 도서관이 소장한 한국 고서(古書) ‘직지심체요절’(1377년 청주 흥덕사 인쇄)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이라는 사실을 학술적으로 입증했다. ‘직지심체요절’은 독일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보다 무려 78년 앞선 것으로 증명돼 우리 인쇄술의 우수성을 세계에 널리 알렸다. 그에게는 ‘직지 대모(代母)’라는 별칭이 생겼다.

고인은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대가 강화도에서 약탈해간 외규장각 도서 297권을 1979년 프랑스 국립도서관 서고에서 발견해 한국 학계에 알림으로써 국내 반환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외규장각 도서들은 프랑스와 오랜 줄다리기 협상 끝에 올해 5월 반환이 완료돼 그의 노력이 소중한 결실을 맺었다. 박 박사는 도서의 완전 반환이 아닌 영구 대여 형식에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지만 19세기 후반 국력이 쇠약했을 때 유린당했던 우리의 문화적 자존심은 어느 정도 위안을 받았다. 그는 프랑스 외교부에서 한국 독립운동 관련 문서를 찾아내는가 하면 50년 넘게 프랑스 신문이 게재한 한국 관련 기사를 스크랩했다. 그가 수집한 한국 관련 자료는 2000상자, 1만5000쪽 분량에 이른다. 별세하기 전까지도 병인양요에 대한 새로운 저술에 힘을 쏟았다.

미혼이었던 그는 일생을 한국 문화를 사랑하고 지켜내는 데 바쳤으나 수난도 따랐다. 프랑스 국적인 그는 외규장각 도서의 존재를 한국에 알렸다는 이유로 프랑스에서 ‘반역자’라는 손가락질을 받고 국립도서관을 그만둬야 했다. 연구자로서 초창기에는 국내 학계로부터도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다.

그는 말년에 한국으로부터 별다른 도움 없이 프랑스 정부의 연금으로 어렵게 생활했다. 병원 치료비가 모자라 고통을 겪었다. 그럼에도 그는 “연구자로서 할 일을 한 것뿐”이라며 한국인임을 늘 자랑스러워했다. 정부는 그의 유해를 국립묘지에 안장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한국 문화에 각별히 애정을 쏟은 그의 정신적 유산을 계승해 나가야 한다.

                                                                                                                                                                 [동아일보 사설을 옮겨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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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쳤는데 먹 향이 코로 가득 들어오며 온몸에 소름이 쫙…. 멍하니 한동안 책만 바라보고 있는데, 사서가 다가와 ‘어디 아프냐’며 걱정했어요. 제 인생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입니다.”

 어제(한국시간) 타계한 재불(在佛) 역사학자 박병선 박사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외규장각 도서를 발견하던 순간을 이렇게 회고했다. 박 박사 덕분에 외규장각 도서는 올해 4월 무려 145년 만에 고국 땅을 밟았다. 그로부터 불과 7개월 후 박사가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것을 보면, 약탈 문화재 발굴·반환은 고인의 필생(畢生)의 소명이었다. 1972년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을 발견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이라는 사실을 입증한 공로도 엄청나다. 고인은 타계하기 직전까지 병인양요 관련 저서를 집필하고 독립운동사 연구에 의욕을 보였던 타고난 학자였다. 온 국민과 함께 깊은 고마움과 애도를 표하며, 삼가 명복을 빈다.

 생전의 박병선 박사는 외규장각 도서 귀환을 반기면서도 ‘5년 단위 갱신 대여’ 형식에 마음 아파했다. 우리는 “외규장각 도서가 한국에 영원히 남도록 노력해달라. ‘대여’라는 말이 사라질 때까지 모두 합심하라”는 고인의 당부를 잊어서는 안 된다. 정부는 해외로 반출된 우리 문화재 실태를 철저히 파악해 유형별 중·장기 대응책을 세우는 일을 서두르기 바란다. 사실 민간인인 박 박사가 연구비 부족에 시달리며 오랜 기간 혼자 동분서주할 때 역대 대사관·한국문화원 관계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부끄러워해야 옳지 않겠나. 다음 달로 반환이 마무리되는 『조선왕실의궤』 등 일본 궁내청 소장 약탈 도서도 민간단체들의 끈질긴 반환 노력에 크게 힘입었다.

 우리는 고인을 국립묘지에 모시는 방안에 찬성한다. 국립묘지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이 규정한 ‘국가나 사회에 현저하게 공헌한 사람’에 박 박사가 해당되지 않는다면 다른 누가 될 수 있겠는가. 그는 이미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고, 프랑스 국적도 국립묘지 안장을 꺼릴 이유가 되지 못한다.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깨우쳐준 고인의 유지(遺志)를 실천하는 것은 이제 우리 모두의 몫이 됐다.

                           [중앙일보사설에서 옮겨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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