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도록 한결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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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꿍시렁 꿍시렁]

아저씨가 옳아요 ! 힘내세요 !

경재생각은 ? 2009. 2. 10. 18:51

"어서 오세요"

출근 길 버스,
희끗희끗한 머리의 운전기사 아저씨가
시원시원한 인사로 아침을 상쾌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상쾌함도 잠시...
버스는 거북이 행진을 계속하고 있었어요.

창밖으로 보이는 다른 버스들은
차선을 '이리저리' 바꾸어 가며 잘도 빠져나가는데,
내가 탄 버스의 기사 아저씨는
버스전용차선을 절대 벗어나지 않은 채,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리는 거였습니다.

평소보다 약간 일찍 나왔지만 슬슬 불안해졌어요.
아니나 다를까, 여기저기서 불평의 소리가
튀어나오기 시작했죠.

급기야 출입문 앞에 있던 승객 한 명이
운전사 아저씨에게 다가갔습니다.

"여보쇼, 다른 버스들 안 보여요!
다들 빨리빨리 잘들 가잖아!"
그 승객은 삿대질까지 해가며,
아저씨한테 폭언을 퍼붓는 것이었어요.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기사 아저씨보다 젊어 보이는 승객의 무례함에
기사 아저씨가 언짢아할까봐...
아니, 괜한 싸움으로 출근길이
더 늦어지면 어쩌나 하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그 때 기사 아저씨의 표정이
운전석의 뒷거울로 보였어요.
무슨 말인가 하려다 애써 입술을 꼭 무는...
그리고 잠시 두 눈도 꼭 감았습니다.

사실, 버스가 버스전용도로로 가는 것이 당연한데,
성격 급한 우리 승객들은
그 당연함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거죠.
갑자기 버스 안은 싸늘한 적막이 감돌았습니다.

그때였어요.
여중생 정도로 보이는 교복차림의 학생 한 명이
내리려다 말고, 운전석으로 슬며시 다가섰습니다.

운전기사 아저씨 앞에서
속삭이는 학생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아저씨, 아저씨가 옳아요. 힘내세요."
"예? 아, 예."

아저씨는 못 알아들으신 듯
얼떨떨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얼굴이 환해지셨습니다.

그 여학생은 부끄러웠는지
얼른 앞문으로 뛰어내렸습니다.
그리고 소녀의 부끄러움과는
다른 부끄러움으로 내 얼굴은 빨개졌습니다.


                                                                          - 배달된 새벽편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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